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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일은 딱히 없었지만, 있었다고 한들 그 누구도 몰랐을 거다. 세월살이는 감정을 절제하고 그 발효시점을 지연하는 방법을 사람이 터득하도록 훈련시킨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10의 슬픔을 5로 절제하고, 5를 1로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진다는 뜻이다. 오늘 슬픈 일은 없었다만, 그러나 이건 퍽 슬픈 사실이다. 대학생 때, 항상 싱글벙글 잘 웃던 친구가 있었다. (엄연히 따지면 누나지만… 본인이 빠른 년생이라며 친구하자고 했다.) 반면에 난 항상 심각하고 표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를 보면서 ‘항상 뭐 저리 실 없이 웃고 다닐까, 걱정도 없고 거참 상팔자다’라고 은근히 생각하던 속내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짐짓 얕보는 마음이었다. 학기를 보내면서 서로 친해지고 난 뒤의 일이다. 종종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였고, 그날도 별 다른 일 없이 저녁에 잠깐 술을 먹자고 한 뒤에 그 친구를 비롯해 3명이 술집에 모였다. 나는 그 날 유독 마음에
세상에는 지나간 뒤에야 더 분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가 있던 자리는 소란하지 않았는데, 돌아서고 나면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누그러져 있다. 사람들 사이에 얹혀 있던 마른 기색이 걷히고, 말들은 제자리를 덜 다투며 흘러간다. 무슨 큰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은 남을 대할 때 말끝에 힘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런 장면 앞에서 오래 머문다. 상냥함은 대개 그렇게 드러난다. 지나간 자리에 은은한 향기처럼 남는다. 사람들은 밝은 것을 먼저 본다. 많이 아는 사람의 말은 번쩍이고, 많이 가진 사람의 생활은 눈에 띈다. 지식은 사람을 높은 데로 데려가고, 재물은 사람의 앞에 길을 낸다. 그것들은 살아가는 데 쓸모가 크다. 그러나 쓸모가 곧 품위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세상에서 그 반대의 경우를 자주 본다. 말은 유려한데 그 말끝이 늘 남의 살을 긁는 사람이 있고, 손에는 넉넉한 것이 들려 있는데 좀처럼 누구도 따뜻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많이 가졌다는 사실은 그가 어떤 사
헛된 고민과 삿된 상념에 처진 어깨를 재구축하려고 한껏 스트레칭을 한다. 시선을 돌아 세우면 등 뒤의 모든 상황이 일시정지라도 되는 듯, 겁 먹은 꿩 마냥 눈 돌려 살았던 세월, 목석과 같이 단단해진 몸은 굳건함 보담도 고집의 상징과도 같아서, 굽히지 못하던 신념과 굽히지 않던 편견 사이에서, 나의 몸은 또 닳고 또 굳어 있게 마련인 즉. 비명 지르듯 뻗은 나의 손과 발 끝에 땀 맺히는 광경 생소하다. 열매 맺음이 오롯이 노력의 산물이라면, 사사로이 맺힌 잘못과 잘못의 결론이 저와 같았으면 하는 바람과 달리, 송글거리다 이내 맺히고 떨어지는 모든 순간 순간에, 옳고 그름에 닮은 바 하나 없는 찰나로도 기록하지 못할 시간의 터울. 나는 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가도, 말해야하는 순간에는 항상 이렇듯 먹먹한 잔구름으로 남는 것이다. 안개를 빚는 사람은 종종 이리도 깊은 한숨을 삼키려고 묵묵히 말을 아끼나 보다.
분연히 솎아낼 이성의 필터가 유독 외국어를 할 때면 작동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영어가 짧은 탓에 그때그때 생각나는 간단한 단어들로 내 의사를 표현하곤 하는데, 가장 쉽게 설명하는 나의 의사가 곧 내 진심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그런 말로부터 배운다. 나는 나의 편견과, 나는 나의 오만과 또 오만 가지 안 좋은 습관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밀한 성분이야 어쨌든 사람 모양으로 서 있는 노력이 또 가상하여서, 그나마 하나를 고쳤다면 어제보다는 나으리라 매번 자위하는 낌새는 별달리 새로울 것도 없다. 스스로 축복해야만 축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외로운 것들 가운데에, 유독 설핏 엮은 핑계로 자축하는 존재를 말하자면, 무릇 정당함이란 곧 등가교환에 있다는 퀴퀴하고 따분한 격언을 앞세우게 된다. 정당히 외롭고, 또 정당히 발전할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여도, 그런 대단스러운 이 몸은 집 떠난 자리에서 불과 한 발짝쯤은 멀어졌을까. 허허, 설령 그게 아니래도 물론, 거스를 잔돈은 없
2015년 호주에서 처음 만나 모진 시간을 함께 보냈다. 힘든 일이 많았던 만큼 서로에게 손떼와 얼룩이 남았으나 그게 더러워 보이기는 커녕 볼 때마다 단란한 추억처럼 맘이 설렌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나를 위해 맞춤 주문 제작된 것처럼 딱 맞는 옷이 있기 마련이고 이건 사람도 물건도 매한가지다. 그런 사람이나 물건을 찾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고 기적이라 불러도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또 그런 기적으로 맺어진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서ㅡ즉 늙어 가면서도 서로를 더 아름답게만 볼 수 있단 건 시간이 가진 가장 무한한 축복처럼 여겨진다. 마음이 깊어 간다는 건 오크통에서 잘 숙성되고 있는 위스키와도 같아서 향도 맛도 더 진해지기 마련이다. 당신과 내가 단순히 늙은 게 아니라 성숙해온 거처럼, 나와 이 친구와의 관계 또한 세상에 몇 없는, 엔트로피를 역행하는 아주 희귀하고 또 고귀한 만남이라 칭하고 싶다.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는 말이 있다. 가끔은 이 피할 수 없는 진리 같은 문장이 날
책을 읽는 건 마음의 양식을 얻는 것이라 하던데, 늘 좁아지기만 하는 마음은 책을 양껏 먹어도 좀체 나아지지가 않는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린 나의 풍경 속에는, 호랑이와, 산신과, 동앗줄이 있었고, 관우와, 유비와, 조조 또한 있었을 따름인데, 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기에 너무도 초라하고, 잊혀질 존재라기엔 너무나 소중한, 이 나의 모순은 어떤 낱말로 쓰여지는가ㅡ 문득 스스로 묻고픈 그런 기분이 든다. 주인공은 아무래도 조금 멋진 편이 낫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응당 나도 더 멋지려고 노력하는 편이 낫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은, 대게 이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 줄을 더 읽건만, 나의 마음은 한 줄보다 더 작아진다. 책은 공허한 내 세상은 이만치 키우고, 키가 크지 않는 나를 영영 작게만 하나 보다.
날씨가 웃고 있었다. 구름도 웃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창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니 세상이 온통 웃음으로 가득해 보인다면, 그것은 내가 웃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달에는 내게 행운이 하나 찾아왔다. 동생이 가입해 있는 모임의 보육원 행사에 함께 가자고 권한 것이다. 동생은 본래 무엇이든 꼼꼼히 따져 보는 성격이라, 그가 권할 정도면 적어도 요상한(?) 모임은 아니리라는 안심이 먼저 들었다. 나 또한 아이들을 좋아하는 데다, 매일 집에 틀어박혀 일만 하는 생활에 조금 지쳐 있던 터라 흔쾌히 그러겠노라 했다. 아이들이 낯을 가리면 어쩌나 하는 작은 불안이 없진 않았지만, 그 정도의 불안은 부풀어 오르는 기대 앞에서 이내 납작해지고 말았다. 삼성화재 모빌리티 박물관에 도착하니 삼삼오오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그에 비례하는 웃음들이 보였다. 이런 웃음밭에 서 있으면 제아무리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라도 절로 웃음에 물들어 눈꼬리가 순해질 법하다. 평소 표정이 많
위임은 비용을 없애지 않습니다. 옮길 뿐입니다 핵심 "알아서 해줘"는 자유를 주는 말처럼 들리지만, 대개는 탐색 비용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말입니다. AI는 그 비용을 토큰과 컨텍스트로 치르고, 사람은 시간·주의력·정치적 에너지로 치릅니다. 좋은 위임은 목표·맥락·기준·권한·검증을 함께 설계하는 일입니다. 밤 11시, 한 개발자가 화면을 봅니다. 오후에 "기존 거 참고해서 만들어줘"라는 한 줄을 받았고, 지금 그는 만들고 있지 않습니다. 어느 파일이 기준인지 모르니 폴더를 열었다 닫다 하고, 노션을 뒤지고, 작년 문서가 아직 유효한지 메신저로 묻고 답을 기다립니다. 옆 화면에서는 그가 시킨 AI 에이전트가 같은 일을 더 빠르게 하고 있습니다. 닥치는 대로 파일을 읽고, 컨텍스트 창이 무관한 코드로 차오르고, 그럴수록 답은 흐려집니다. 둘 다 일하는 게 아니라 헤매고 있습니다. "알아서 해줘." 이 한마디는 자율성을 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대개는 일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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