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3 꿈을 키우는 집 아이들과
"모든 어른은 한때 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날씨가 웃고 있었다.
구름도 웃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창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니 세상이 온통 웃음으로 가득해 보인다면, 그것은 내가 웃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달에는 내게 행운이 하나 찾아왔다. 동생이 가입해 있는 모임의 보육원 행사에 함께 가자고 권한 것이다. 동생은 본래 무엇이든 꼼꼼히 따져 보는 성격이라, 그가 권할 정도면 적어도 요상한(?) 모임은 아니리라는 안심이 먼저 들었다. 나 또한 아이들을 좋아하는 데다, 매일 집에 틀어박혀 일만 하는 생활에 조금 지쳐 있던 터라 흔쾌히 그러겠노라 했다. 아이들이 낯을 가리면 어쩌나 하는 작은 불안이 없진 않았지만, 그 정도의 불안은 부풀어 오르는 기대 앞에서 이내 납작해지고 말았다.
삼성화재 모빌리티 박물관에 도착하니 삼삼오오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그에 비례하는 웃음들이 보였다. 이런 웃음밭에 서 있으면 제아무리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라도 절로 웃음에 물들어 눈꼬리가 순해질 법하다. 평소 표정이 많이 없는 편인 내가 바로 그 표본이 아닐까 싶었다.
잠시 기다리니 아이들과 다른 모임분들이 도착했다. 관상을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살며 쌓인 눈썰미만으로도 그 얼굴들에 깃든 선함을 읽기엔 충분했다. 어릴 적 지독히 낯을 가리던 꼬마였던 나를 떠올리며 품었던 불안은 그제야 가셨다. 처음 보는 낯선 아저씨에게도 장난스레 말을 걸 줄 안다는 것은, 그 마음에 허물이 없다는 것이자 그들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사실만으로 가슴 어딘가에 감동이 차올랐다.
함께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견학에 앞서, 짧은 틈에도 온 열정을 쏟아 아이들과 놀아 주는 한 모임분을 보았다. 오랫동안 답하지 못했던 물음, 선함이란 무엇인가 혹은 사람은 어떻게 선해질 수 있는가의 실마리가 그 모습 어딘가에 놓여 있는 듯했다. 막상 아이들을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들보다 내가 더 잘 놀 자신이 있었는데, 그 넘치는 에너지를 다 받아 내다가는 이미 노후로 접어든 관절이며 근육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공포가 슬며시 들기도 했다.
이후 조를 나누어 박물관을 탐방하기로 했다. 나는 첫인상이 어딘가 션·정혜영 부부를 닮은 분들과, 서진이라는 중학생 아이와 한 조가 되었다. 서진이에게 말을 거는 일은 (내가 그맘때 한창 사춘기였다는 기억이 떠올라) 처음엔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한마디씩 찔러 넣어 보니, 곧잘 대답을 해 주는 데다 이 어수룩한 어른을 깔보는(다시 말하지만, 내가 그랬으므로) 기색도 없어 금세 긴장이 풀렸다.
박물관에서는 전시 정보로 문제를 내고 답을 적게 한 팜플렛을 나눠 주고 있었다. 서진이는 팜플렛을 받아 들자마자 문제 풀기에 몰두했다. 아이들이란 그저 노는 걸 더 좋아하리라는(이 또한 내가 그랬으므로) 내 편협한 짐작이 깨지는,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중간중간 체험 활동을 하면서도 문제 풀기야말로 메인 요리라는 듯 거기에 골몰하는 서진이를 보며, 지난날에 대한 잔잔한 후회와 함께 저 재능을 잘 가꾸면 학업에도 큰 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서가 부족한 문제 앞에서 서진이가 자연스레 소거법을 꺼내 드는 모습은 적잖이 놀라웠다. 생각을 구조화하는 연습이 조금만 보태진다면, 능히 두각을 드러내고 스스로도 제법 재미를 붙일 것이다. 개러스 무어의 그 다양하고 재밌는 퍼즐과 퀴즈 책들을 사 주면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내 짐작일 뿐이니 언젠가 한 권 들고 가 함께 풀어 보면 즐겁겠다 싶었다.
오후 3시 무렵 관람을 마쳤다.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뻤다. 내게 허락된 기쁨의 그릇이 가득 차 넘치는 기분마저 들었다. 헤어질 때는 못내 아쉬웠지만, 다시 볼 기회가 남아 있으니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서진이에게는 어른들과 놀아주느라 너무 고생이 많았다는 말을 건넸다.
수원으로 돌아와 모임분들과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한 가지를 발견했다.
조금 전 헤어진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이, 마주 앉은 모임분들의 얼굴 위로 겹쳐 보이는 것이었다.
이상하면서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 까닭을 잠시 헤아려 보았다.
추측한 바 하나는 아이들의 행복이 우리에게 옮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딘가 조금씩 아이를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 무엇이 사실이든 아니든,
아이들의 모습이, 모임분들의 모습이 내가 닮고 싶은 모습임에는 틀림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는 길, 아침의 그 웃던 날씨가 다시 떠올랐다.
세상이 온통 웃고 있다고 느꼈던 건, 어쩌면 내가 잠시 아이로 돌아가 웃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의 창으로 세상을 본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오래 닫아 두었던 창 하나를 그날 다시 연 셈이었다.
아이의 창을 말이다.
먼지 쌓인 창틀 너머로 잠깐 동안 스며든 웃음 닮은 햇볕이,
잔향처럼 오래 마음에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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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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