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03 오늘 나에게 슬픈 일이 있었는가
슬픈 일은 딱히 없었지만, 있었다고 한들 그 누구도 몰랐을 거다. 세월살이는 감정을 절제하고 그 발효시점을 지연하는 방법을 사람이 터득하도록 훈련시킨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10의 슬픔을 5로 절제하고, 5를 1로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진다는 뜻이다. 오늘 슬픈 일은 없었다만, 그러나 이건 퍽 슬픈 사실이다.
대학생 때, 항상 싱글벙글 잘 웃던 친구가 있었다. (엄연히 따지면 누나지만… 본인이 빠른 년생이라며 친구하자고 했다.) 반면에 난 항상 심각하고 표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를 보면서 ‘항상 뭐 저리 실 없이 웃고 다닐까, 걱정도 없고 거참 상팔자다’라고 은근히 생각하던 속내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짐짓 얕보는 마음이었다.
학기를 보내면서 서로 친해지고 난 뒤의 일이다. 종종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였고, 그날도 별 다른 일 없이 저녁에 잠깐 술을 먹자고 한 뒤에 그 친구를 비롯해 3명이 술집에 모였다.
나는 그 날 유독 마음에 거리끼는 일이 있었다. 아니, 줄곧 목적 없이 살고 있는 저 자신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는 게 옳은 말일 것이다. 세상은 암만 봐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마음은 깃대에 매달려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고 있었다.
그저 바람이 조금 불던 날이었을 뿐이다. 나는 친구에게 성토하듯 내 신세를 한탄하며 내가 겪는 불행의 크기를 쇼케이스하듯 떠벌렸다.
술을 마시면서 계속 나를 위로해주던 그 친구로부터, 그 날 난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가 어렸을 때 가정의 불화로 부모님이 이혼한 것,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면서 넉넉치 못한 형편 덕에 많은 고생을 한 것,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서 이미 학생일 때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에 뛰어든 것. 그렇게 원하던 대학에 오기까지의 이야기.
내가 그 순간 스스로에게 느낀 모멸감은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거대한 것이었다. 거센 바람이 뇌 안에서 메아리치는 것 마냥 끊임 없이 비난을 던져 댔다. 그 비난의 아픔보다 부끄러움이 더 컸다. 날 위로 하던 나의 불쌍한 내 친구에게 나는 무슨 말이나 위로를 했던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어찌저찌 자리를 마무리하고 집에 와서는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실존하는 내 어리석음의 크기를 직접 목도한 충격은 아무래도 당시의 낮은 정신력으로는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길고 또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여러 해가 흘렀다. 서로의 소식이 닿지 않은지도 10년이 넘었을 무렵이고, 그 불에 데인 듯 아팠던 기억은 아주 까마득히 잊혀진 거 같았다. 그 무렵 나는 호주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었다. 호주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힘들어서 향수에 젖는 날이면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찾아서 읽었다. 소설가 ‘박완서’의 책을 보았던 날이다. 그리고 한 문장에서 숨이 멎어버렸다.
”아무렇지 않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시죠. -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그 날 일말의 저항도 없이 터져버린 눈물은,
그 때의 그녀에 대한 생각이 나서였을까.
아니면 나 또한 이제야 어른이 되었다는 감격의 눈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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