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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냥 일을 하러 간다


사이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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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인생의 마지막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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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 말씀이 없어 미안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9년에 최설 작가는 의사에게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름도 예스러운 병 결핵. 그중에서도 치료약이 없는 슈퍼 결핵을 앓고 있었거든요.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작가는 죽기 전에 장편 소설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병상에서 A4 원고지 100장 분량의 '소년의 일생'이라는 첫 장편 소설을 완성합니다. 하지만 장편 소설은 죽고 작가는 살아납니다. 소설은 공모전에서 탈락했지만, 작가는 그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기적 같이 임상시험 치료에 성공하면서 더는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1년에 36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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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을 하러 간다."

병마에서 살아남게 된 그는 2010년경 에브리맨이라는 소설에서 위의 대사를 만납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고백하자면, 나를 소설가로 만드는데 저 말보다 더 큰 몫을 한 것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작가는 1년에 360일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카페에 가서 그냥 글을 썼습니다. 무려 12년 동안 말이죠.

소설가로 등단하고 싶던 그는 단편 쓰기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번번이 등단의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단편 소설에 집중하던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엔 첫 단편소설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소년의 일생'을 쓴 지 11년 만에 작가는 '대실패' 폴더에서 옛 작품을 다시 꺼내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씁니다. 그리고 2022년. 옛 소설은 '방학'이라는 새이름을 달고 한국경제 신춘문예에 당선됩니다.

 

마음을 울리는 꾸준함의 힘

최설 작가의 등단 스토리는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비록 죽는 병은 아니지만, 저도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려 고통을 받고 있어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했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한 노력을 통해 등단을 한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글쓰기의 꾸준함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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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게는 ‘통상 영업행위=Business as usual’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혹은 그런 정해진 패턴에 나 자신을 몰아넣고 생활과 일의 사이클을 확정했을 때에야 비로소 장편소설 쓰기가 가능해진다—라는 면이 있습니다.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 맥 화면으로 말하자면 대략 두 화면 반이지만, 옛날부터의 습관으로 200자 원고지로 계산합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는 '영감'이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감이라고 하면 방탕한 천재 예술가가 난장판 속에서 떠올리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함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글쓰기든 일이든 말이죠. 느리지만 꾸준히, 끊임없이 한 걸음씩 나아가야겠다는 결심을 또 한 번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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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문득 선생님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계속했으니까 안 거다. 그만두지 않았으니까 안거다. 지치지 않았으니까 그 열매를 맛본 거다.
<모든 요일의 기록 - 김민철>

 

2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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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사이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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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의 댓글


추천 댓글들

  • 커뮤니티 안내자

글 잘 읽었습니다. 

뭔가 잘 읽히면서 매력적인 글입니다. 어떤 방식인걸까 나중에 시간을 내서 @사이시옷님의 글 스타일을 역설계해봐야겠습니다.

간결한데 양념이 자박 자박한 그런 느낌이예요.

사실 글 쓰기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과 분야에서 꾸준함은 중요한거 같아요.(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거 같지만요.)

이 글에 저는 제가 쓴 아래 두개 글을 연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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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TITAN 정회원
10 hours ago, Key said:

글 잘 읽었습니다. 

뭔가 잘 읽히면서 매력적인 글입니다. 어떤 방식인걸까 나중에 시간을 내서 @사이시옷님의 글 스타일을 역설계해봐야겠습니다.

간결한데 양념이 자박 자박한 그런 느낌이예요.

사실 글 쓰기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과 분야에서 꾸준함은 중요한거 같아요.(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거 같지만요.)

이 글에 저는 제가 쓴 아래 두개 글을 연결하고 싶습니다.

 

어제 키님 댓글을 보고 나서 제 문체에 많은 영향을 준 작가 또는 작품이 누구인지 생각해봤습니다.

가장 지분이 큰 것은 아무래도 피천득님의 수필들입니다. 이 분의 글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소설가로서가 아닌 수필가로서 많이 좋아했어요. 삽화를 그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안자이 미즈마루도 좋아했고요.

그 외에는
표절이 밝혀진 이후로는 안보는 소설가 박민규,
표현이 처절하고 너무 날카롭고 뜨거운 한강,
정치인으로는 별로지만 작가로는 센스 최고인 김웅,
최근에는 톡톡 튀는 문장을 쓰는 신예희, 문보영 작가의 문체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궁금한게 하나 있어요.
지금 제가 가진 문체와 비슷한 미국 작가가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다. 아니면 이 사람 글 참 좋다라고 느낀 작가나 블로그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
슬슬 영문으로도 글을 쓰려고 하는데 문체를 흡수할 글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문체와 글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쓸때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역시 독자의 행복한 피드백을 받을 때에요.
고등학교때 소설을 쓰고 친구들에게 보여줄때 그들의 표정을 보며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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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뮤니티 안내자

미국 작가와 블로그에서는 (사실) 어떤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던거 같습니다.

그냥 읽으면서 글이 쉽내 어렵내 정도였던거 같아요.

영어 시를 읽으면서 위대한 시인의 시에서 별다른 감동도 못느꼈던거 같아요.

한국어로 된 글은 좀 다른거 같아요. 그러고보니, 전 다른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서 와 좋다하는 작가가 작년에 한분 생겼내요. 이민진 작가님이내요.

파친코를 전 애플 티비로 제일 먼저 보고, 영어로 된 소설을 읽고,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윌라 오디오북을 듣고

문장 하나 하나를 열심히 읽고 듣고 했던거 같아요. 영어로 된 원작을 읽을 땐, 한번도 울지 않았는데, 번역된 책을 읽을 때는 엄청 눈물 훔치며 읽었던거 같아요.

아마 제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녀서 그런거 같아요.

@사이시옷님의 문체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정말 제가 좋아하는 문체입니다.

그려지고, 느껴지고 들리는 듯한 그런 글을 쓰시는거 같아요.

단톡방에서 대화 할 땐 사실 전혀 느끼지 못했거든요.

글을 좀 더 많이 써주셨으면 합니다. 나중에 모아지면 정말 볼만할꺼 같아요.

그림도 잘 그리시는데, 짧은 글과 그림으로 인스타 하셔도 좋을꺼 같아요.

게다가 제주도에 계시니, 소재도 엄청 많을꺼 같아요.

제가 일전에 크리에이터 분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 분은 일상의 모든게 소재라고 하더라고요.

저랑 만나서 얘기나누는 것도 어떤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

공교롭게도 말씀해주신 작가들 중 아는 작가는 딱 한분 피천득님 뿐이내요.

활자중독에 엄청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참 부끄럽내요. 콜록 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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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TITAN 정회원
5 minutes ago, Key said:

공교롭게도 말씀해주신 작가들 중 아는 작가는 딱 한분 피천득님 뿐이내요.

활자중독에 엄청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참 부끄럽내요. 콜록 콜록

왜 부끄러우세요 ㅎㅎ. 작가와 작품은 수업이 많고 취향은 더 많으니까 모르실 수 있지요.

키님이 읽으신 책들 저는 대부분 모를겁니다. 파친코도 아직 안읽어봤어요. 다음 읽을 책 리스트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니,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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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뮤니티 안내자
1 minute ago, 사이시옷 said:

왜 부끄러우세요 ㅎㅎ. 작가와 작품은 수업이 많고 취향은 더 많으니까 모르실 수 있지요.

키님이 읽으신 책들 저는 대부분 모를겁니다. 파친코도 아직 안읽어봤어요. 다음 읽을 책 리스트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니, 좋은 밤 되세요!

네, 전 사이시옷님과 얘기 나누는게 너무 좋내요. 

문득 카톡만이었다면, 이런 매력을 전혀 몰랐을꺼 같아요.

Ice Hockey Sport GIF by N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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