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아웅
우리집 고양이 꾸끼는 덩치는 너덧살 아이 같고 꼴에 노르웨이숲 품종이라고 멋진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 저곳 사람이건 물건이건 넉살 좋게 치대며 다니는 고양이다. 정말 웃긴건 사고를 치다가 내 손에 목덜미를 잡혀 혼날 때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을 앙 다문 상태로 가만히 있는다. 마치 자기 눈에 안보이면 집사인 나도 사라질거라 믿는 양.
17개월 내 아들도 그렇다. "꼭꼭 숨어라"를 외치면 어디 들어가서 숨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 서서 앙증맞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린다. 자기에게 안보이면 남에게도 안보인다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게 숨은(?) 아들에게 "우리 애기 어디 있니?"를 외치곤 한다.
나도 그랬다. 그것도 초등학교 6학년 때. 연좌제로 단체 반성문을 쓰는게 분해서 반성문이 아닌 성토문을 썼던 것이 발단이었다. 반 아이들은 1시간 넘게 자리에 꼼짝 못하고 앉아 담임 선생님이 나를 욕하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난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상태로 계속 욕을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살짝 감아보았다. 담임은 내 버르장머리 없음을 이제 부모님에게서 찾기 시작 했지만 눈을 감으니 한층 나았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아무 상관 없게 느껴졌다. 곧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오늘 업무를 하다 팀원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을 보았다. 얄팍한 말로 순간을 모면하려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지만 이내 화가 났다. 그러다 문득 내 초등학교 때가 생각나자 조금은 마음 한 구석이 저려왔다. 고양이든, 아기든, 초등학교 6학년이든, 어른이든 어쨌든 숨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을 테니까. 그것이 자기 눈을 가리는 아웅아웅일지라도.
21. 1. 15.
Edited by 사이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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