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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의 힘은 선택으로부터 온다


내가 부러워했던 블로거가 있다.

그는 수려한 글을 쓰고, 자신의 주장을 매혹적으로 펼쳤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해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글을 쓸 수 있느냐'는 질문부터 '대체 연애는 어떻게 하는거냐'는 질문까지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그 중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여러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그 얘기를 적어보려 한다.

그는 학생시절 '영화'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시절 영화 커뮤니티(당시에는 게시판)에 글을 많이 게시했다고 했다. 영화잡지에도 독자 투고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전문지 편집장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원고료를 받고 글을 기고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그 경험을 공유하며,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요약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지적훈련이 된다.'며 그 방법을 권했다.

글을 읽을 당시, 나는 '오! 영화 요약만 해도 지적훈련이 된다니. 엄청나군!' 이라고 감탄하며 내가 좋아했던 액션 영화들에 대해 적다가 글을 완성도 하지 못했다. '역시 어려웠어'라고만 생각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블로거가 생각났다. 이제야 그 블로거가 말했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가 실제로 권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 글을 쓸수록 배우게 되는 것은 글을 적는 것보다 글에서 빼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것
  • 이 과정은 누군가가 쓴 글을 볼 때는 배울 수 없는 것이라는 점
  • 스스로 글을 쓰게 되면, 결국 어떤 부분을 지워버려야 한다는 것
  • 그 과정에서 '내가 지운 이유'를 스스로 고민하면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점
  •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서도 '특정 부분'은 없어도 무관한데, '왜 글에 포함시켰는지'는 궁금증이 시작된다는 것
  • 그리고 어느 날, '나라면?' 이라는 의문이 결합되는 운명의 순간에 도착하는 점 

나는 그에게 그의 함의가 '이것'이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훌륭한 다른 재야의 블로거들처럼 그는 모든 자신의 글과 함께 사라졌다.

Edited by 재욱.

  • Like 3

7 개의 댓글


추천 댓글들

  • 커뮤니티 안내자
Key

Posted

제 소원이 이루어졌내요.

첫 글 포스팅 감사합니다. 진짜 끈질긴 구애를 보내 사랑을 쟁취한 사랑꾼의 심정입니다. : )

재욱님 글을 읽으며 배우고 소통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행복하내요 >.<

 

Quote


  • 글을 쓸수록 배우게 되는 것은 글을 적는 것보다 글에서 빼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것
  • 이 과정은 누군가가 쓴 글을 볼 때는 배울 수 없는 것이라는 점
  • 스스로 글을 쓰게 되면, 결국 어떤 부분을 지워버려야 한다는 것
  • 그 과정에서 '내가 지운 이유'를 스스로 고민하면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점
  •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서도 '특정 부분'은 없어도 무관한데, '왜 글에 포함시켰는지'는 궁금증이 시작된다는 것
  • 그리고 어느 날, '나라면?' 이라는 의문이 결합되는 운명의 순간에 도착하는 점

 

특히 이 부분의 통찰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누군가가 쓴 글을 볼 때는 배울 수 없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제가 많이 작년부터 꾸준하게 느꼈던게 "글을 많이 읽는다고 글 쓰기를 잘 할 수 있는건 아니구나"였고, 글을 쓸수록 배우게 되는게 글을 적는 것보다 글에서 빼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거든요.

저는 아직 다음 단계로 넘어가진 못했지만, 읽었던 책들을 틈틈히 다시 읽으며 작가와 대화를 시도중입니다.

  • Like 4
  • beTITAN 정회원
사이시옷

Posted

  • 글을 쓸수록 배우게 되는 것은 글을 적는 것보다 글에서 빼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것

 

이 부분 정말 많이 공감됩니다. 저는 '가지치기' 단계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발표를 하던, 글을 쓰던 이 가지치기 단계가 제일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 두근거리기도 합니다.

가지를 어떻게 치냐에 따라 전체 나무의 모습이 예뻐지기도, 못생겨지기도 하니까요.
이 부분에 능숙해지는 길은 자주 해보되 가끔은 텀을 두고 나중에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비타이탄에 두 종류의 글을 업로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새로 쓰는 글, 하나는 옛날 글을 옮겨오는 것입니다.
옛날 글을 옮겨올 때 이 글에서 말씀하신 것들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왜 표현을, 문장을 살렸을까 이런거요. 마치 제 글을 제 글이 아닌 것처럼 읽게 됩니다.
조금 떼놓고 볼 수 있게 되는거죠. 이것이 다른 작가의 글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아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Like 4
  • 커뮤니티 안내자
Key

Posted

12 hours ago, 사이시옷 said:

저는 '가지치기' 단계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렇내요. 가지치기 단계. 

12 hours ago, 사이시옷 said:

이 부분에 능숙해지는 길은 자주 해보되 가끔은 텀을 두고 나중에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와 공감합니다. 근데 나중에 읽어보면 너무 부끄러운 경우가 많은거 같아요 ㅠ.ㅠ

12 hours ago, 사이시옷 said:

옛날 글을 옮겨올 때 이 글에서 말씀하신 것들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왜 표현을, 문장을 살렸을까 이런거요. 마치 제 글을 제 글이 아닌 것처럼 읽게 됩니다.

저도 기본 글감을 옵시에 메모로 기록하는걸 별개로 하면서, 해당 메모에 살을 붙히거나 빼면서 글을 쓰고 있는데, 제 글이 제 글이 아닌 것처럼 읽게 되는 경험을 저도 조금씩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저는 좋더라고요. 

그 때 왜 이런 키워드를 넣었었지? 생각하기도 하고요.

다른 작가의 글에 적용해보는건 아직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부지런히 연습하고 수련해서 그렇게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고 대화하며 책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 Like 4
  • beTITAN 정회원
사이시옷

Posted

2 hours ago, Key said:

다른 작가의 글에 적용해보는건 아직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부지런히 연습하고 수련해서 그렇게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고 대화하며 책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저도 다른 작가의 글을 읽을때 적용해봐야지 하고 결심했습니다.

  • Like 4
  • beTITAN 정회원
재욱.

Posted

On 2023. 2. 8. at 오후 4시 57분, Key said:

첫 글 포스팅 감사합니다. 진짜 끈질긴 구애를 보내 사랑을 쟁취한 사랑꾼의 심정입니다. : )

그 동안 저만 너무 이기적으로 행복했던 것 같아,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통찰이랄 것이 없는 짧고 부족한 글을 환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Key님이 결국에는 대승하실 것에 의심한 적이 없는데요, 이유는 어마어마하게 읽고 소화하게 계신 것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예요. 결국은 양이 이기니까요.

작가와 나누신 대화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눠주시는 모든 글, 감사합니다!

  • Like 3
  • beTITAN 정회원
재욱.

Posted

On 2023. 2. 9. at 오전 4시 45분, 사이시옷 said:

저는 '가지치기' 단계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가지치기'라고 불러주시니까, 어떤 나무가 생각났어요.

'백송'이라는 흰색 빛이 나는 소나무인데요. 오래된 백송만 본 사람은 어린 나무를 알아보지 못하고, 어린 백송을 보고 나중 자라날 백송을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좀 특이한 나무예요. 서울 재동 백송은 천연기념물이예요. 600살 정도라고 해요. (제가 제주도에 있을 백송을 찾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결국 못 찾았어요. 😭)

자라난 기간에 따라서도 차이가 큰데, 어떻게 가지치기를 하느냐에 '이후에 자라나는 모습'도 말씀해 주신 것 처럼 무척 다를 것 같아요. 

On 2023. 2. 9. at 오전 4시 45분, 사이시옷 said:

요즘 비타이탄에 두 종류의 글을 업로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새로 쓰는 글, 하나는 옛날 글을 옮겨오는 것입니다.

@사이시옷님의 글을 읽을 때, 마지막 줄에 남겨주신 날짜를 유심히 보고 있었어요. '새로 쓰시는 글과 이전 글 사이에서 흐르는 감정이 아직 쓰여지지 않는 글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부족한 글을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Like 3
  • 커뮤니티 안내자
Key

Posted

14 hours ago, 재욱. said:

그 동안 저만 너무 이기적으로 행복했던 것 같아,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통찰이랄 것이 없는 짧고 부족한 글을 환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Key님이 결국에는 대승하실 것에 의심한 적이 없는데요, 이유는 어마어마하게 읽고 소화하게 계신 것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예요. 결국은 양이 이기니까요.

작가와 나누신 대화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눠주시는 모든 글, 감사합니다!

글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는걸 느낍니다.

짧은 댓글에서도 느꼈고, 포스팅 해주신 글에도 느꼈습니다.

저는 약간 (많은 생각 없이) 일단 쓰고 보자라는 생각이 더 있어서 @재욱.님 글을 읽을 때 @사이시옷님 글을 읽을 때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단어 하나 하나 문장 하나 하나 @재욱.님은 신중하게 선택하고 쓰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통찰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일단 연습량으로 승부하고 있겠습니다. 

댓글 하나 하나 좋아요 하나 하나 저도 모두 감사드립니다!

  • Lik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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