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뚜렷한 꿈과 목표는 필요 없다. 나의 북극성(Polaris), 이것 하나만 찾자
사진: Unsplash의Kristopher Roller
학창시절,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칸에 무엇을 적었었는 기억이 나는가?
어렸을 적 제 장래희망이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다시 한번 상기해봤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래희망: 우주인
이것은 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이렇게 바뀌었다.
5학년: 피아니스트, 6학년: 비디오게임 디자이너
그런데 대학을 앞두고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확인해보니 조금 달라져있었다.
고1: 외교관, 고2: 경제학자, 고3: 외교관
대학교 학부생 때는 고3 장래희망과 비슷하게 정치외교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경영학 석사를 하고 있고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을 이용한 연구를 하고 있다.
나의 일대기를 자서전으로 출판되었다면, 누가봤을 때 어릴적부터 우주과학, 음악, 개발에 타고났으며 정치외교, 경제학, 경영학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천재라고 생각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부산에 7촌까지 모인 대가족 모임에서 어느 친척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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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꿈이 뭐니?"
초등학교 5학년의 브라이언: "피아니스트요"
???: "뭐하는 피아니스트?"
나: "잘 모르겠는데요?"
???: "꿈이 크고 구체적이지가 않아! 꿈을 크게 구체적으로 갖고 그것을 쫓아가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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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을 한국에서 자라셨다면 이런 맥락의 대화를 어른들과 틀림없이 한번쯤은 나누어봤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나는 그 당시 피아노에 빠져서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는데, 그냥 피아노가 좋았을 뿐,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단 생각을 한 적도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도 닌텐도 DS 게임에 빠져 이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확고하고 구체적인 꿈은 없었다.
나는 그때 그저 흥미대로 장래희망을 적어을 뿐인데, 어른들은 나에게 "꿈이 없다"라고 구박을 했었다.
근데 이것이 잘못된 것인가? 도저히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확고한 꿈을 가져야 할까? 꿈이 없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나도 나름 어른이 되어 되돌아보니, 학창 시절 꿈이 없어도 된다.
구체적인 꿈이 없다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나에게 국영수사과음미체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시험을 치루어서 경쟁을 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꿈을 찾는 법을 가르준 적이 없다. 있었다고 할지언정, 진지하게 나의 꿈을 대해서 상담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진로탐색 시간같은 것은 여러번 한 기억이 있다. '브라이언 학생은 테스트를 해보니 이런 직업이 맞을거에요~'라는 직업이 나왔지만, 난 그 결과가 늘 싫었다.
당장 나의 내일, 다음 주에 무엇이 될 지 모르던 상황에서, 나의 머지않은 미래를 내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 수 있는가? 단기적인 꿈을 가졌더라도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자책과 실망을 자주 경험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하다는 의미일까?
뚜렷한 꿈과 목표가 없을지언정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성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방향성'을 의미한다.
나의 북극성을 찾자
북극성(Polaris)은 나에게 참 재미있고 흥미로운 존재이다.
지구의 북극(Northern Pole)에서 1도 내외로 오차해있으며, 주위에서 제일 밝은 별이라고 한다.
위치도 거의 변하지 않으며 매우 밝기 때문에 대개 나침반이 없는 상황에서도 북극성을 이용해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1800년대 미국 노예제가 존재하던 시절, 노예제를 합법화 및 찬성하던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를 통해 자유로운 북부로 탈출할 때 북극성이 엄청나게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양한 문화들에서도 북극성이 언급되었다.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Maori)족에서는 일반적으로 북극성을 "물 위에서 카누가 가야될 길을 안내하는 별"로 자주 언급이 되기도 했으며. 북미 알래스카 주 원주민의 이누이트(Inuit) 족은 북극성을 험한 북극 환경에서 자신의 부족원들을 인도하기 위해 영웅이 별이 된 것이라고 언급되기도 했다.
각종 시와 노래들에는 밤하늘에 변치 않는 존재로 표현되기도 하며, 희망과 영감의 존재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북극성은 다양한 곳에서 방향성과 희망의 존재로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북극성에 도달할 수 없다.물론 너무 당연하게도 지구에서 323광년이나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이런 북극성은 우리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는 '큰 구체적인 목표' 와 같다.
우리가 아무리 꿈을 크게 가진다 해도, 당장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에, 1년 후, 5년 후, 10년 후 그것을 얼마나 이룰 수 있을지는 잘 모른다.
아무리 크고 동기부여되는 목표를 가졌을지언정, 그 목표만 보고 쫓아가는 와중에 어떠한 장애물을 만나 좌절과 실패를 경험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잠시 주저 앉아서 '내가 목표를 너무 크게 잡은 것인가?', '내가 능력이 없는 것인가?', '나의 길이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면서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런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을지라도 거기서 자책하면서 '나는 여기까지인가 봐'라고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뒤로 돌아봐라. 그 동안의 다양한 고생과 경험을 통해 반드시 성장해있었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더 나아졌을 것이다. 하나의 큰 꿈을 가지고 달려가다가 잠시 좌절을 경험했지만, 그 꿈이 결국 나의 길이 아니란 것을 확인했을 수도 있거나, 나의 꿈을 조금 수정해야 함을 느꼈을 것이다. 즉,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이전보다 더 명확해졌을 것이다.
내의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크나큰 꿈이지만, 뭔가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달려가다보면, 뭔가 성장해있을 것이고 나의 꿈이 명확해져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북극성과 같다. 마치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북극성처럼, 우리가 원하는 목표가 처음엔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북극성을 쫓다보면, 어느새 성장해있고, 나의 북극성에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어느새 북극성은 더 밝아져있음을 깨달아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나의 북극성을 따라가면 된다. 그럼 방향을 찾게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내가 관심있는 것에 계속 몰두했다. 우주과학에서부터, 피아노에서, 비디오게임, 정치외교, 경제학, 지금은 경영학까지. 나도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그 당시에 내가 제일 원하던 것, 좋아하던 것을 쫓아왔기에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단지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북극성을 쫓아온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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