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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3년 2월 16일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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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였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시간만 지난 것처럼.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건만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번역해야 했다. 도저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정신을 겨우 붙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온라인 메신저에는 새벽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눈 B군이 들어와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B군은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온라인 모임에 나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개인 지식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에 끼고 싶었지만 나는 번역 작업만 해야 했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그의 발표는 애써 무시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의 탁월함이 자꾸 부러웠으니까. 그런데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무엇을 했을까. 나를 지나쳐갔던 정보와 경험들은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헝클어진 생각을 결국 풀지 못한 채 그렇게 출근했다.

 

그래, 긴 하루였다. 오늘따라 회사에서 글 쓰는 게 어려웠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게 옳은가 의구심만 들었다. 글의 역풍을 온몸으로 맞느라 앞으로 걷지만 몸은 점점 뒤로 걸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힘들게 뛰었음에도 나는 출발선보다 뒤에 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퇴근할 때 평소에 타던 지하철 대신 자전거를 탔다. 천호로 사무실을 옮긴 후 처음이었다. 낮은 언덕과 그보다는 좀 더 길게 활강하는 자전거 길을 타고 돌아다녔다. 아직 바람이 서늘했다. 그래도 춥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늦겨울 바람이 왠지 나를 위로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며 오늘 아침에 있었던 개인 지식 관리에 관한 친구의 발표를 생각했다. 정보를 습득하는 것만큼이나 그 지식을 어떻게 정리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느꼈었다. 영어로 된 정보를 한국어로 변환하는 나의 번역 작업도 개인 지식 관리만큼 중요할까? 아니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까? 번역가는 구글, DeepL과 같은 번역기에 밀려 언젠간 사라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국 정보와 지식의 상관관계 덕분에 정말 실력이 좋은 번역가는 계속 시장에서 찾지 않을까 생각해다. 결국,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아직도 긴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어쩜 인생이란 자전거가 계속 굴러가는 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바퀴가 멈추는 그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함께 있길 소망해본다.

 

bicycle-1839005_1280.jpg

 

 

Edited by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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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Recommended Comments

  • VIP Members

괜찮아요.

우리 모두는 남이 부러워하는 존재이자, 남을 부러워하며 나를 자책하는 존재들이에요.
옛날 성철 스님이 말씀하셨듯 산은 산으로 못보고 물은 물로 못봐요.

B님은 탁월하시죠. 하지만 저는 앤드류님도 탁월하다고 생각해요. 각자 분야가 다를뿐.
그거 있잖아요. 영어를 잘한다와 번역을 잘한다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봐요. 마치 공대생이 원서를 가지고 공부를 해도 영어로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요.
다른 언어를 한국어로 매끄럽게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언어 독해 능력뿐만이 아닌 수많은 고민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잖아요.

그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불러왔죠.
제가 본 앤드류님은 지혜가 있으신분이에요.

하나 고백하자면, 제가 만약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든다고 하면 제일 같이 가고 싶은 분이 앤드류님입니다.

전 어제 또 아파서 집에 있었어요. 그럴때마다 스멀스멀 자괴감과 자기혐오의 손길이 목과 얼굴을 타고 올라와요.
내가 또 여기서 주저 앉는구나. 팀장님은 나를 어떻게 볼까. 나는 아들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원래 뒤쳐져 있는데 이대로 묻혀버리는건 아닐까.

자전거가 멈추지 않았다는 앤드류님의 글에 저도 힘을 얻어갑니다.
오늘도 우리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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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ministrators

뭐랄까, 저는 감동과 즐거움을 받는 경험을 할 때면 빚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제가 @Andrew님에게 느끼는 감정이예요.

유쾌하고 즐거운 분께서 약간 기분이 다운되셨내요. 괜찮습니다. 그런날도 있죠. 토닥 토닥. 너무 열심히 이번주를 보내셔서 지치신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지금 딱 그런 상태거든요. 

어제는 아내와 이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르고 가사에 대해 얘기하면서 힐링이 되었던거 같아요. 

@Andrew님에게 마음을 담아 신호를 보냅니다. 힘내세요.! 멋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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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ministrators

그리고 번역은 사실 단순히 해석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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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ministrators
10 hours ago, 사이시옷 said:

전 어제 또 아파서 집에 있었어요. 그럴때마다 스멀스멀 자괴감과 자기혐오의 손길이 목과 얼굴을 타고 올라와요.
내가 또 여기서 주저 앉는구나. 팀장님은 나를 어떻게 볼까. 나는 아들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원래 뒤쳐져 있는데 이대로 묻혀버리는건 아닐까.

@사이시옷님에게도 마음을 담아 신호를 보냅니다.

괜찮아요. 어쩔 수 없는 일에 스스로 주눅 드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더 얘기해서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 배려를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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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P Members

@Key아니.. 제가 트둥이들 좋아하는거 어떻게 아셨습니까!!! 새벽부터 에너지가 차오르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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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ministrators
11 hours ago, 사이시옷 said:

@Key아니.. 제가 트둥이들 좋아하는거 어떻게 아셨습니까!!! 새벽부터 에너지가 차오르는군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지금도 @사이시옷 댓글을 읽으며, 신호를 보냅니다. : ) 

  • Lik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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