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기 위한 첫 단계, 내가 모른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실제 아는 것 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 이동진 평론가
존경하는 구요한 교수님이 세컨드 브레인 독서 모임 때와 더배러 단톡방에서 몇 번 언급하셨던 "이동진 평론가"에 대해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이동진 평론가를 찾아보게 되었고 아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을 보면서 느낌 점들.
0. 데본싱크을 잘 쓰다가 옵시디언을 함께 쓰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당시엔 단순히 "내 스타일로 글을 쓰기가 어렵다."였는데, 이 영상을 보고 나니, 그 당시 내 머릿속에 있었던 "무언가 이대로라면 큰일인데!" 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고, 이동진 평론가님의 얘기를 듣다 보니, '바로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많은 지식들을 외주를 주고 있다.
검색 가능성을 지식으로 착각하고 있다.
검색 해서 나오니까, 쭉 보고 5분 동안 읽으면 해당 지식에 대해 마치 "내가 아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지식을 검색할 수 있는 대상으로 머릿속에서 생각.
아직 검색을 안해봤어도, 검색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무엇이든 스스로 잘 안다고 크게 착각하면서...)
이런식으로 지식을 다루기 때문에, 스스로 전문가만큼 모든 것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지식 위계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이 분업이 된다.
내가 이랬다. 데본싱크를 잘 활용하고, 검색을 잘 하고, 필요한 것들을 잘 찾아서 빠르게 활용했었다.
(부끄럽지만) 데본싱크안에 10년 넘게 모은 수많은 지식들이 (언제든 빠르게 찾아 꺼내 쓸 수 있으니) 다 내 지식인줄 알았던거 같다. 쿨럭
"배우기 위한 첫 단계, 내가 모르는 걸 인정해야 한다." 늘상 이해하는 말이고, 스스로 늘 그러려고 노력하지만(그래야만 그 지점부터 무언가를 다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속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거 같다.
특히나 내 경우, 문제를 해결하고 조직에 답을 주거나 무언가를 결정해아 하는 입장에서 스스로 "무엇이든 다 + 잘 알아야 한다."라는 강박이 있었던거 같은데, 나보다 휠씬 더 스마트한 동료들 덕분에 이제는 이 부분을 많이 내려놓게 된거 같다.
모르는건 모른다고, 잘 이해가 안갈 땐 설명을 쉽게 다시 해달라고 얘기하고 요청하는걸 이제는 (너무나) 뻔뻔하게 잘 하는거 같다.
어떻게 보면, 옵시디언을 배우고 쓰게 된 계기 또한 한 순간의 결정이 아니고, 이런 의식의 흐름속에서 어떤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 우연찮게 옵시디언의 소개 영상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beTITAN이라는 사이트와 블로그를 열고, 오픈 준비만 하는데 몇달이 넘게 걸렸는데, 이렇게 첫 글을 쓰고 시작할 수 있게 되어서 참 좋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배우고 연결하고 정리해서 새로운 지식 콘텐츠로 하나씩 채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조금 느릿해도, 천천히 한걸음씩, 내가 그리고 상상하는 사이트로 만들어나가고 싶다.
3년전 쓴 이 글을 다시 꺼내 읽어보면서
그런 걱정이 든다.
독서와 글쓰기를 하지 않은 채로 AI를 더 많이 쓰게 되면, 단순히 “문해력이 떨어진다”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지적 탐구와 학습 자체의 근육이 약해질 수 있지 않을까.
AI는 너무 친절하다.
내가 제대로 묻지 않아도 그럴듯한 답을 준고 내가 충분히 생각하지 않아도 정리된 문장을 준다. 내가 확신이 없을 때 “그럴듯한 확신”을 준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사람은 원래, 힘듬을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과정을 건너뛰는 방식으로 학습하지 않을까?
AI는 그 ‘건너뛰기’를 너무 쉽게 만들어주니까.
독서 없이 AI만 쓰면, 나는 점점 “AI가 만든 구조” 안에서만 생각하게 되는게 아닐까? 깊게 파고드는 대신, 보기 좋게 정리된 요약만 읽은체 마치 다 안듯 행동하지 않을까. 헷갈림을 견디지 못하고, 바로 결론만을 찾아 점프하려 하지 않을까?
또, 글쓰기 없이 AI만 쓰면, 나는 내 생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고 붙여넣는’ 사람이 되는건 아닐까? 겉으로는 생산성이 폭발하는데, 정작 내 속에서는 사유의 내공이 쌓이지 않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그걸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거다. AI가 내놓는 결과물이 너무 매끈하니까, 내가 이해한 줄 안다. 내가 생각한 줄 안다. 내가 탐구한 줄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탐구하는 지루한 과정과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지식이기 때문에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흔들리고, 조금만 질문이 깊어지면 버벅이고, 작은 반대 논리에도 힘없이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AI를 잘 활용하고 쓰는 것과 별개로) 오히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독서는, 내 머릿속에 “남의 생각”을 넣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지형 자체를 넓혀준다.
내가 평생 떠올리지 못했을 관점과 경험 그리고 작가적 사유를 만나게 해주고,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를 넘어가게 해준다.
글쓰기는, 내 생각을 단순히 예쁘게 표현하게 해주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드러내는 장치인데, 내 언어로 써보는 순간, 빈틈들이 드러나고, 빈약한 논리가 들통나고, 결핍된 감정들이 섞인 착각이 정리된다.
그리고 사람과의 대화는, AI가 절대 대신할 수 없는 종류의 자극을 준다.
사람은 “그럴듯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내가 피하고 있던 맥락을 묻고, 내가 숨기던 전제를 찌르고,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에 “왜?”를 던진다.
무엇보다 대화에는, 상대의 표정과 망설임과 반응이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언어가 어떤 무게로 전달되는지, 우리가 실제로 같은 곳에 있는지, 충분히 이해했는지 아닌지를 그냥 알게 된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은 AI를 덜 쓰는 게 아니라, 더 제대로 쓰는 것 같다.
AI는 “답”을 빨리 주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읽고, 쓰고, 대화하며 생각을 키워갈 때 그 과정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주는 도구랄까?
그래서 더 확신하게 된다.
AI가 강해질수록, 독서와 글쓰기와 사람과의 대화는 옵션이 아니라 경쟁력이 된다.
AI가 내 대신 생각해주는 시대가 아니라, 내가 나의 사고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더 읽고, 더 쓰고, 더 대화해야 하는 시대.
아마 beTITAN에서 내가 꾸준히 쌓고 싶은 것도 결국 이런게 아닐까?
“검색”이 아니라 “사유”를,
“요약”이 아니라 “탐구”를,
“결과물”이 아니라 “공감”을 남기는 (나의) 기록들.
Recommended Comments